-
새해 첫 출근은 뉴욕으로 했다.
정확히는 6일간의 장거리 대기가 2023년 1월의 첫 스케줄이었다.
하나 보란 듯 찍혀 있는 JFK .
" 그렇다면 아침 출근이고 A380이네 어머 미쳤네 만석이야"
그렇다.
눈은 감았지만 뜬 눈이나 다름없이 매시간 시계를 확인하며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
2023년에 대한 새로운 각오나 계획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빨리 레스트 가고 싶다'
2023년 첫 출근 첫 생각이 레스트다.
더 친절한 승무원이 되겠다 라거나 믿음직스러운 동료가 되겠다라거나 승진하고 말겠다는 각오가 아니다.
어떻게든 빨리 눕고 싶다는 게 오늘의 내 입장이라니.
뭐 몸이 부서지는 느낌은 말할 것도 없다.
14시간 동안 12000보를 걸었다.
평상시 비행기에 탑승해서 짐을 챙기며 혼잣말을 한다.
"이 비행에서는 나만 잘하면 된다"
이번 비행은 그 혼잣말을 못 해서 그런가 연이은 실수를 했다.
빵을 잘 못 히팅했고 시간차 없이 나가야 하는 서비스 순서에 계속 버퍼링이 걸렸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자존감 높이는 연습으로 자기 암시를 해왔다.
'나는 승진한다' '나는 방송 자격 딴다' 같은 목표가 확실한 자기 암시도 있지만
보통은 '나는 할 말은 하는 사람' '나는 거절할 수 있는 사람'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한 사람'처럼 내가 갖고 싶은 태도에 관해 암시한다.
회사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거나 주고 욕먹지 않기 위해
' 이 비행에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암시를 했던 거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말이 없어졌다. 실수들만 계속 생각이 났다.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또 했다.
괜찮다던 후배들도 말이 없어졌다.
휴업 3년 동안 당당해지자고 했던 자기 암시가 몇 시간 만에 빛을 잃었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꼭 잊지 말고 말하자고 다짐한다.
해피뉴이어는 무슨.
나만 잘하자.